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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조작된 간첩 원정화 “김현희처럼 살게 해준다고” 충격 진실(종합)

[뉴스엔 이민지 기자]

원정화 간첩 사건 진실이 충격을 선사했다.

11월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08년 원정화 간첩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남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여인을 사랑한 대가가 이토록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돌아올줄, 12년 전 26살 황중위는 몰랐다. 전 육군 장교 황중위가 당시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그녀는 신분이 남달랐다. 2006년 당시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였던 황중위는 안보강의를 위한 탈북자 강사 원씨를 만났고 친분을 쌓은 후 연인으로 발전했다. 황중위보다 8살 연상이었던 34살의 나이에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있었던 원씨.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 앞에서 수면제를 수십알 먹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졌고 그녀는 황중위를 만나기 위해 부대로 찾아오곤 했다. 그녀는 유난히 황중위의 부대에 관심이 많았다. 또 강원도에 위치한 여러 다른 군부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았다는 원씨. 황중위는 부대를 돌며 안보강의를 하는게 그녀의 직업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고 난 후로 황중위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황중위는 "차가 계속 따라오더라. 계속 봤는데 이상했다. 일부러 빨리도 가고 느리게도 갔는데 계속 있더라. 미행이라고 생각됐다. 겁났다"고 회상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유난히 그런 일이 반복됐다. 모든 의문은 그의 연인 원씨의 정체가 공개되면서 풀렸다.

그녀는 검찰과 경찰, 국군 기무사령과 국정원 등이 3년간 합동수사를 벌인 끝에 검거된 여간첩 원정화였다. 북한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남파됐다는 그녀는 탈북자들을 납치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일 등을 했다. 일본에서도 간첩활동을 했던 까닭에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빼어난 외모로 '한국판 마타하리'라 불렸고 그녀의 연인 황중위도 조사 대상이 됐다. 황중위는 "원정화와 관련된 물품은 다 가져가더라. 휴대폰도 뺐겼다"고 말했다. 황중위는 당시 조사관에게 의아한 질문을 받았다. 조사관은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고 군기밀을 누설했다는 것이었다. 원정화가 자백한 것이라고 했다.

원정화는 조사에서 술기운에 자신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고백했고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황중위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고 원씨의 정체를 감추고 비밀을 알려줬다는 것이 원정화의 주장이다. 황중위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다. 탈북자고 강연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며 억울해 했다. 그러나 황중위는 공범으로 징역 3년6월에 처해졌고 두번 다시 군복을 입을 수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 것일까. 12년만에 그녀를 만났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원정화는 당시 간첩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당시 북한에서의 좋은 출신 성분과 화려한 이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탈북 전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15살의 나이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단체에서 서기로 근무하며 대학에서 정치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 그 후 평양에 위치한 특수부대에 입소해 태권도, 독침 등 대남침투 특수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25살에 보위부 공작원으로 선발돼 중국에서 먼저 활동했으며 탈북자를 색출해 북송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2001년 임신한 상태로 국내에 입국한 그녀는 탈북자로 신분을 세탁한 후 간첩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며 북한 보위부에 정보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따 무역업체를 차리기도 했다. 수익금은 공작금으로 사용됐다. 그녀의 대담한 행각은 그동안 봐왔던 간첩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진짜 간첩이 맞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일성 10촌으로 알려진 강명도 전 교수는 그녀의 학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명도 전 교수는 "15살된걸 뭘 안다고 낮에 서기로 시키고 금성정치대학에 보내겠냐. 금성정치대학은 성인들이 가는데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로청에는 서기가 존재하지 않고 금성정치대학엔 야간반이 없다고 한다. 강명도 전 교수는 "북한은 임신하라고 하지 않는다. 고의적으로 임신해서 한국으로 가게끔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북한 장교 출신 홍강철 역시 "805호 훈련소는 없다. 미군 부대 사진 찍었다고 하는데 이미 다 아는거다. 미군기지는 위성지도 보면 다 나오는데"라며 웃었다. 그녀가 얻은 정보들이 군사 기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전 남파됐다 체포됐던 무장간첩 출신 이씨는 "그런 애들을 내 입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원정화는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얼음물에서 오래 참기? 그런거 왜 하냐. 거짓말이다. 표창 던지기, 독침 던지기 이런거 영화에서 봤겠지 뭐. 우리 때 홍길동이란 영화가 유행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공작하면서 돈 안주고 벌어서 쓰라고 안한다. 걔는 공작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원정화 전 남편을 찾았다. 중국 동포와 결혼하기 위해 중국을 찾았다 원씨를 만났다는 전 남편은 "중매로 만났다. 사근사근하고 말도 잘했다. 간첩이란 느낌을 가진 적 없었다"고 말했다. 돈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출산도 하기 전에 갈라섰다는 두 사람.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전 남편은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었다. 생김새가 안닮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2008년 원정화 간첩 사건 당시 방송에서 아이의 아버지를 만난 적 있다. 중국에서 동거했던 정씨였다. 원정화는 정씨에게 연락해 양육비를 요구했다. 원정화는 전남편 집에서 나온 후에도 그에게 수차례 연락했었다고 한다. 원정화는 이후 또다른 남자 신씨와도 결혼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혼 약속 후 잠적했다. 그녀가 남긴건 수천만원의 빚이었다.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남자들과 그 사이에서 벌어진 금전적 문제들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그녀가 간첩으로 검거되기 1년 전 만난 적이 있었다. 재혼업체 문제점을 알리겠다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제보를 한 것이다. 결혼정보업체로부터 남자를 소개 받았는데 알고보니 엉터리 정보였다며 피해를 호소했던 원정화는 결혼정보업체에 800만원을 보냈던 통장 내역을 보내줬다. 이후 간첩으로 검거된 후 공작금이 오갔다고 알려진 통장이었다. 당시 통장 내역에는 공작금으로 의심될만한 내역이 없었고 원정화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황중위가 있던 부대에서 안보강사를 한 것 역시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원정화를 과연 특수훈련을 받은 간첩으로 볼 수 있을까.

수사기관은 2008년 당시 그녀에게 지령을 내린 상부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김씨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해 있었다는 것이다. 원정화와 무역업체를 같이 운영하며 지령을 내리는 상부로 일했다는 김씨. 원정화 자백에 따라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조선노동당 당원증과 지령을 받았다는 단파라디오가 발견됐다. 간첩이라는 결정적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모든 것이 의붓딸 원씨의 거짓말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무역업을 한 것만이 진실이라고. 김씨는 "고등중학교로 못나온 저런 애가 간첩? 마타하리가 지옥에서 통곡하겠다"고 말했다. 원정화가 네살 때 원정화 어머니와 재혼했다는 김씨는 누구보다 원정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계속 가출하고 사기치고 물건 훔쳤다. 탈북 시킨 것도 계속 사기 협잡해서 재수감 될까봐 가족회의 해서 보낸거다. 무슨 남파간첩이냐. 새빨간 거짓말이다"고 밝혔다.

김씨는 원정화가 스스로 간첩이 된 이유를 출소 이후 찾아온 후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걔 동의하에 녹음한 것도 있다"고 말했고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2014년 출소 후 김씨를 찾아온 원정화는 자신의 거짓 자백에 사과했다. 누군가 자신을 간첩으로 신고했다는 수사관의 말에 당황했다는 원정화는 "고등학교 졸업했다는 소리도 못하겠고 그래서 거짓진술 했다. 모른다고 하니까 이렇게 자꾸 나올거냐고 하더라. 보름동안 밥도 안 먹었다. 무섭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라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말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국가안전보위부다 거짓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상부라고 한거다. 난 경찰서 유치장에서 살 때 미치는 줄 알았다"고 밝혔다.

수사관 회유에 스스로 간첩이 됐다는 원정화의 고백. 그래서일까. 당시 수사 결과를 두고 많은 의문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원정화가 중국에 있을 당시 중국 보위부 해외공작 지역책임자는 수사기록 등에 등장하는 이름에 대해 "원정화 정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쓰지 않는다. 이땐 내가 지역 책임자였다. 당시 원정화가 임무를 받았으면 내가 왜 모르겠냐. 내가 알 수 있는 이름도 여러개 나와야 하는데 없다"고 말했다. 수사진이 확보한 증거 중 그녀가 간첩임을 증명할 직접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었다. 오로지 원정화의 진술과 탈북자 진술이 전부였다. 하지만 주변인 진술도 신빙성이 떨어져 보였다. 합동수사본부 발표에 북에서도 이례적으로 "날조한 모략극"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사건을 취재했다는 허재현 기자에 따르면 원정화를 최초로 수사한 경기청 전 보안수사대장 소모씨는 원정화가 간첩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수사 중단 후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그는 이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음성파일에 따르면 소씨는 조사 과정에서 원정화에게 폭탄주부터 건넸다고 밝혔다. 소씨는 "김현희 얘기하니까 원정화가 김현희 얘기에 상당히 고무됐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는 "원정화 문제가 아니고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묶은거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를 거물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소씨는 "이명박 정부에 있어서 호재였다. 촛불시위도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였던 2008년 여름, 거리는 촛불로 가득했고 원정화 사건은 그 시기에 발표됐다. 미모로 군인을 포섭한 거물급 여간첩 사건은 광화문에 쏠려있던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에 충분했고 원정화는 5년간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해할 수 없는건 출소 이후 그녀의 행보다. 출소 후에도 간첩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고 활동했다. 김정남 피살사건 당시에는 전문가로 방송에출연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간첩이라는게 잃는 것보다 얻는게 많았을거다. 방송 출연도 하고 인지도를 바탕으로 강사활동도 하니까 거기에서 오는 돈도 있고 자존감도 회복했을거다. 연극성 성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원정화 간첩사건은 그녀의 거짓말과 수사기관의 설계가 더해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피해자는 원정화의 연인이었던 황중위다. 그는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황중위는 "법전을 보여주면서 국가보안법은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다. 인정 안하면 무기징역이고 인정하면 옷만 벗는다고 했다. 반말로 하면서 볼펜 던지고 윽박질렀다"고 회상했다. 당시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조사 과정이 담긴 녹화 영상을 살펴봤다. 7번째 조사까지 혐의를 부인했던 황중위는 갑자기 원정화가 간첩임을 알았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해당 조사를 끝으로 참고인에서 피의자가 됐다. 강압적으로 조사 한 모습은 담겨있지 않았다. 황중위는 "영상에 그날 몇시부터 몇시까지인지 모르겠는데 길게 비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낮시간 영상 녹화에 공백이 있다. 이전과 다르게 신원 미상의 조사관이 등장해 황중위를 서서히 압박하기도 했다. 조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원정화가 보낸 의문의 편지들. 그녀가 황중위에게 편지를 쓴 의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허위 자백을 하라고 한 것이다. 황중위 재심 담당 변호사는 "공범끼리 편지를 주고 받게 놔두는게 말이 되냐"며 "수사기관이 시켰다고 봐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으로 수사했던 간첩 원정화 사건. 조작된 진실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황중위는 원정화 집을 찾아갔으나 원정화는 경찰을 불렀다. 황중위는 원정화에게 재심 준비에 대해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원정화에게 전화가 왔다. 원정화는 "나는 찾아오면 계속 신고할거다. 내 인권침해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나라가 아무때나 찾아오냐. 나 좀 편히 살자. 네가 재심하는거 나는 관심없다. 오늘 네 나이를 생각해봤다. 너 결혼은 했냐. 잘 살고 결혼 축하하고. 앞으로 이런 일로 몇십년 후에라도 보지 말자"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김현희처럼 살게 해준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12년 전부터 더 과장되게 말하고 있는 원정화. 원정화가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뭔가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정화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탈북민들은 "간첩임무 받았다는 것만 말하면 김현희처럼 해준다고 한다. 간첩 되보자고", "간첩 하나 잡으면 1계급 특진은 기본적으로 올라가고 그냥 만들자고 한다. 대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팀에서 받으면 간첩으로 살만하지"라고 밝혔다. 원정화는 출소 이후 찾아간 의붓아버지 김씨에게 한 수사관으로부터 한달에 30~40만원씩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는 "엄청 많은 증거가 제기됐다. 양심을 걸고 확신한다. 그게 뒤집어지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뒤집어진다고 해서 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다"면서도 "원정화라는 사람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하고 대화해야 한다. 군인하고 그런 것도 생존을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공소장과 판결문에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보안수사대장 소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씨를 원정화 사건 피해자라고 말했다. 그는 원정화 딸을 수사관 집에 볼모로 잡아놓았다며 "원정화는 남파간첩이라고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중위는 "국가가 개인한테 이러면 안된다. 본인도 그렇고 날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어떤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거다. 나한테 했던 것보다 더 했을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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